후기톡

서울 4-5주차 보호자x 후기(긴글주의)

3 년전

오늘 아침에 중절수술 마치고 지금까지 쭉 자다가 일어나서 이렇게 글을 적네요.

그냥 탈퇴할까 했지만 저또한 여기서 많은 위로와 정보를 얻었기에 제 글이 다른 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후기를 씁니다.



저는 20대 초반이고 남자친구도 또래입니다. 

원래 피임약을 장기복용하다가 잠깐 쉬는 게 좋겠다고 판단을 했고 피임약을 끊자마자 임신이 된 케이스예요. 

5월 11일 수요일 아침 얼리체크로 진한 두 줄 확인했고 확인 되자마자 집 근처에 친절하다는 산부인과로 달려갔습니다. 

의사 선생님께서는 마지막 생리일이 4월 11일이면 아직 1달밖에 안 지났기 때문에 임신이라고 해도 아기집이 안 보일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고, 

그래도 초음파를 한 번 해서 보고 판단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. 


초음파를 했더니 아기집이 잘 보였고 크기가 아직 1cm도 안 된다, 보통 1cm 정도 되었을 때 수술을 하는데 

아마 이번 주 금요일에 오면 그쯤 되어있을 거다라고 말씀을 하셔서 바로 금요일에 수술 일정을 잡았어요. 

논외로 여기 산부인과 원장님 젊은 여선생님인데 정말 좋으셨어요. 

제가 여태까지 검진이나 치료를 위해 간 모든 병원 통틀어서요. 

가격은 싼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여유 되시는 분들이 가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. 

쓸데없는 말 전혀 안 하시고 친절하고 상냥하게 진단해주셨습니다. 

그날 초음파와 피검사를 진행했고 진료비는 11만원 정도 나왔습니다.



남자친구한테 임신이 확정된 얘기를 전했고, 

남자친구가 금요일에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수술 다음 주 수요일로 미룰 수 없겠냐고 물어봤지만 

전 얼른 이 상황에서 1분 1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혼자라도 금요일날 하겠다고 말했어요. 

저는 제가 이 사태에서 감당하고 있는 정신적 고통, 그리고 감당할 신체적 고통과 후유증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이 큰 정도라고 생각했고 

그것만으로 제가 감당해야 할 건 충분하다고 생각해 남자친구에게 수술비 전액을 감당할 의향을 물어봤고 

남자친구도 바로 동의해 제가 금액적으로 감당한 부번은 없었습니다. 

저는 남자친구가 그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사정이 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하게 요구했던 것도 있어요...!



그리고 수술하기 전 자정부터 물을 포함해 금식을 했습니다. 

임신 후에 불면증도 심해졌고, 마음도 복잡해 새벽까지 잠을 못 이뤘던 것 같아요. 

당일 아침, 저는 병원으로 향했고 들어가기 전 현금을 뽑아갔습니다. 

(근데 알고보니 계좌이체도 가능했더라고요ㅠ...저도 제 예상보다 많이 나와 차액을 이체했습니다) 


의사선생님과 만나기 전 간호사분께 혈압을 잰 후 영양제와 자궁유착제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. 

두 개 각각 두 가지 종류씩 있었는데 아마 영양제는 5만원, 8만원 자궁유착제는 5만원(?), 15만원 짜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. 

영양제는 굳이 비싼 거 맞을 필요 없다고 하셔서 자궁유착제 15만원 영양제 5만원짜리를 추가로 선택했습니다! 

선택 후에는 수술동의서를 썼고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. 

그 후 의사선생님을 다시 만났고 의사선생님은 여전히 따뜻하고 친절하셨습니다. 

그림을 그려가며 수술 방법을 설명해주셨고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일이나 관리 방법 등을 말씀해주셨습니다. 

설명을 다 들은 후에는 자궁이 열리게 하는 거라는 약을 넣고 대기했어요. 

조금 뒤에 수액실로 들어가 수액을 맞다가 시간이 되어 수술실로 이동했습니다. 

팔, 다리 다 묶고 진행했고 이제 잠 드는 약 넣을 거라는 말이 들리고 잠깐 후에 약간 시야가 어지럽더니 바로 잠들었고 눈 떠보니 끝나있었습니다. 


끝나고 나니 수면마취에 취한 저는 배에서 통증을 느꼈지만 아직 잠이 덜깨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로 간호사님의 부축을 받은 채로 회복실로 이동했어요.

깬 후 의사선생님께서 여기 어딘지 알겠냐는 질문을 하셨던 것 같기도 하네요... 

침대에 눕고 나니 갑자기 어마어마한 고통이 몰려왔고 아픔을 잘 참고 티를 안 내는 편이었던 저는 마취에 취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 

아프다, 너무 아프다는 말만 비명처럼 반복했습니다. 의사선생님은 저를 달래주시면서 진통제 많이 넣었다고 말씀해주셨고 

몇 분이 지나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던 저는 계속 혼자 앓다가 의사선생님이 다시 들어오시자 원래 이렇게 아픈 거냐, 너무 아프다며 찡찡댔던 것 같네요(...) 

흐릿한 기억이지만 의사선생님께서 원래 그렇다고 조금만 기다리면 진통제 효과 돌 거라고 말씀해주시며 제 등을 직접 토닥여주셨던 건 선명하게 기억나요. 

정말 혼자 외롭고 아픈 시간이었지만 친절한 선생님 덕에 버틴 거 같아요ㅠ 

정말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까 통증이 차츰 줄어들더라고요. 


그렇게 휴식을 취하다가 주사 다 맞고 나서 퇴원을 했습니다. 

근데 또 걸으려니까 엄청 힘들더라고요^^... 직후에 너무 아파서 계속 숨을 급하게 들이마시고 

그래서 그랬던 건지 온 몸이 저렸고 허리하고 다리쪽이 아팠어요. 

원래 무릎하고 발목이 안 좋은데 그쪽이 많이 쑤시더라고요ㅠ 

수납 후 제가 병원에 낸 총 비용(첫 날 초음파 포함)은 110 정도였습니다. 

이 병원이 비싼 편인 것 같기는 했어요. 그래도 후회는 x...




약 처방받고 나서 집에 혼자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들었네요. 

안 아프시다는 분도 있던데 전 원래 생리통도 엄청 심한 편이었어서 그런 건지 계속 아팠어요... 

웬만하면 보호자 동반하시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.



집에 와서 빈 속에 그냥 처방받은 약 먹고 배에 생리통패치 붙이고 전기장판 틀고 잤습니다. 

근데 발목이 너무 아파서 깼네요... 이젠 배는 거의 안 아픈데 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에요. 

집에 와서 보니까 속옷에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붙여주셨더라고요. 너무 아파서 생리대도 못 사고 집에 그냥 왔는데 그나마 다행이었어요.



삼 일밖에 안 된 여정인데 저한테는 정말 길게 느껴졌던 거 같아요. 

전 원래 조금 덤덤한 성격이고 흘러가는 대로 살자~ 주의인데도 임신 사실을 알고 난 뒤 한나절은 그냥 계속 울기만 했던 것 같아요. 

하지만 토닥에서 여러가지 글들도 읽고, 혼자 생각도 해보니 점점 괜찮아지더라고요. 

솔직히 이미 벌어진 일이고 여기서 지금 내가 울어봤자 망가지는 건 내 정신과 몸뿐이다. 

내가 죄지은 것도 아니고 이렇게 20대 초반에 실수를 했으니 앞으로 남은 긴 인생 이 실패를 토대로 더 성장해나가면 된다고. 

이 기억으로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기에는 삶이 너무 길고 저는 너무 젊다라고요ㅎㅎ 

아기집만 있었기에 죄책감 가지는 것도 웃겼지만 그래도 저 혼자 아기한테 태명도 지어줘보고 

정말 미안하다, 너를 이 상황에서 태어나게 하는 게 더 너에게 못 할 짓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았다, 

엄마 아빠에게 꼭 다음 생에 다시 찾아와 달라, 이런 식으로 얘기도 하고...애기를 위해 기도도 하고 그랬네요ㅋㅋ 


오히려 이렇게 하니까 제 마음 속이 훨씬 가벼워졌었어요. 

수술 전 이틀 동안 나 임산부니까 먹고 싶은 거 먹어도 됨 이런 생각으로 오랜만에 먹고 싶은 거 다 시켜서 먹고 그러기도 했네요. 

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, 

지금도 중절로 인한 상처로 고통받고 있다면, 우리 같이 이겨냈으면 좋겠어요.

이건 인생의 작은 사건 중 하나이고 오히려 이런 경험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게 됐고, 

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됐다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.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어 더 울고 슬퍼하는 것보다는 

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기에 나자신을 챙길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몸관리 잘하셨으면 해요. 

모두 힘내서 살아갑시다.


  • 조회 1028
  • 댓글 30
  • 토닥 18
  • 저장 1
글쓰기